자굴산()
성문(城門)위에 높게 설치된 망루(望樓, 望臺)처럼 우뚝 솟은 큰산
자굴산()은 옛문헌이나 고지도 즉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을 비롯하여 동국여지지와 팔도지도, 여지도, 해동지도 등에 ‘
’으로 표기 되어 있으며, 자굴산으로 불리어져 온 우리고장의 명산입니다. 우리 의령의 주산(主山)이고 진산(鎭山) 정기 맑은 영산이자 널리 알려진 명산이다. 해발 897m 높이의 흩산이지만 골이 깊고 산줄기가 많아서 그야말로 산고수청(山高水淸),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경 좋은 산이다. 의령고을을 갈음해 쓰이고 불리우는 이 산은 고을의 지붕이면서 의령 사람의 기질과 기상을 상징하는 산이다.
자굴산은 해발고 897m 경남의 중심부인 의령의 진산으로 궁류의 한우산과 가례의 응봉산, 용덕의 신덕산과 이어져 하나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의령을 감싸고 있는 이 거대한 산맥 전체의 형상이 마치 황소를 닮았다고 한다. 자굴산의 우람한 덩치가 황소의 머리, 동남으로 길게 뻗은 한우산과 응봉산의 산줄기가 몸통이며 신덕산이 엉덩이 부분에 해당된다. 자굴산과 한우산을 연결하고 있는 “쇠목재”라는 고개길이 있는데 이 고개의 잘록한 모양새가 마치 소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쇠목재로 불리고 있다. 쇠목재 아래 갑을마을의 옛 촌명은 “쇠목”, “쇠목촌”이었으며, 쇠목재는 갑을마을에서 대의면 모의마을을 이어주는 옛날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잿길이었다.
-의령군-
내조마을
이 마을은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와우안식(臥牛安息)의 명지라는 바 큰 황소가 배불리 먹고 누워서 새김질을 하면서 침을 흘리고 있는 지혈이라 보통 와우설(와우혈)이라 말한다. 자굴산이 황소 머리고 동남으로 억세게 뻗은 산줄기가 몸퉁이며 마을은 구시(구유)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칠곡면-
한우산(寒雨山)
의령군 궁류면에 있는 한우산은 해발 836m의 높이로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어 곳곳에 기암괴석이 연출하는 절승이 즐비하다. 한우산은 그 이름부터가 그럴싸한 내력으로 지어졌으니 산이 깊고 수목이 울창하여 시원하기가 마치 겨울의 찬비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한우산 골짜기를 요새처럼 석벽이 둘러 있어 그 모양이 또한 석벽을 방불케 하는 지라 이름지어 한우산성이라 부른다. 옛날 이곳에는 신라와 백제가 오랫동안 서로 뺏기고 빼앗는 격전을 벌였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때 신라 애장왕의 부마 한사람이 이곳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부마가 전사하자 왕이 직접 이곳에 와서 군사들을 지휘하여 싸웠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또한 이곳에 골짜기 이름에 왕다실걸이 있으니 이 또한 그때의 싸움과 관련되는 이름으로 왕이 지휘하는 신라군이 자주 이 골짜기를 적에게 빼앗겼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한우동 골짜기를 사시사철 맑은 물이 굽이치고 흘러서 곳곳에 폭포를 만들어 일대장관을 이루고 있으니 이 또한 천하의 절경이라 하겠다. 이 폭포수는 또 곳곳에 소(沼)를 만들어 놓았으니 농소와 아소는 바위에 파인 웅덩이를 말하는 바 맑은 물에 비친 숲 그림자는 그대로 선경이다. 이곳은 또 여름철에도 모기 한 마리도 없이 서늘하며 따라서 한여름에 내리는 비마저 차다고 하여 한우동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인근에 있는 백학동은 옛날 이곳에서 학이 날아 하늘로 올랐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중턱에 있는 또 하나의 동굴에서는 신라때 태자 한사람이 이곳에서 수도를 했다는 전설과 함께 태자혈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옛날 이 고장의 선비들은 자주 이곳을 찾아 풍류를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 지금은 운계리 계곡에는 그때의 정자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이계곡은 영화 이광모 감독, 안성기, 송옥숙 주연의 "아름다운 시절"에서 한우산을 내려오는 장면을 촬영했던 곳으로 영화의 내용과 같이 주인공 일가의 몰락하는 가정사를 우마차 끌고 산자락 굽이굽이 내려오는 것으로 인생의 역경을 마지막 장면에 연출한 곳이기도 하다. 봄철에는 철쭉이 군락으로 피어나 산 전체가 벌겋게 물들어 가족단위의 등산객들이 1일 등반코스로 즐겨 찾고 있으며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 산 정상에서 연출하는 오색의 패러글라이더도 장관이다.
-의령군-
산성산(山城山)
동쪽이 한우산(寒雨山)인데「찰비산」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고 서쪽이 산성산(山城山)인데 보통 산성터니 성터라고 부른다. 이 두 산맥 사이 칠마장 정도의 계곡이 바로 「찰비골」이다. 한우동(寒雨洞)으로 적는다. 오뉴월 한더위에도 이 산, 이 골에서 맞는 비는 겨울비처럼 차갑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산성산은 가야와 삼국시대 때 외침을 대비한 산성이 있었고 군사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이웃 합천군 문화유적소개에도 「주위 약 2km의 석축(石築)성지로 성내에는 다시 두루 2백m의 토축성(土築城) 두 군데가 남아 있으나 붕괴되었으며 왜병이 침입 때는 봉수대(烽燧臺)로 이용했다」고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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