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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관련·정보

[雲門에서 華岳까지]가지산과 억산 사이

by 가시덤풀 2015. 10. 2.
능선따라 하얀 암릉·암괴, 골짜기엔 숨겨진 비경이…

 

 가지-운문 두 산의 경계는 아랫재다. 가지산 정상서 거기까지는 3.7㎞ 정도다. 그런데도 이정표는 1시간 20분 걸으면 도달할 수 있다고 써 놨다. 산길이 그만큼 순탄하다는 말이다.

출발 5분 만에 산상(山上)공원 같은 헬기장을 거치고, 합계 15분이면 절벽덤에 도달한다. 거기서 시작되는 남쪽 ‘호박소계곡’(용수골) 조망대는 1,065m봉에 이를 때까지 30분 이상 계속된다. ‘호박소’는 그 골 맨 아래에 있는 돌확 모양의 엄청 큰 돌 웅덩이다. 주위는 특이한 형상의 폭포 절벽이 둥그렇게 둘러쌌다. 천연기념물인 재약산 ‘얼음골’ 진입로를 통해 접근하게 돼 있다.

호박소계곡 외곽능선은, 6시간 정도에 걸쳐 한바퀴 빙 도는 환종주 등산코스로 인기다. 주능선 1,065m봉서 백운산(891m)을 거쳐 내려서는 지릉이 계곡의 서편 외곽이다. 동쪽 울타리는 중봉서 남쪽으로 내려서는 ‘남릉’이다. 백운산 능선으로 올라 1,065m봉~정상봉~중봉을 거친 뒤 남릉을 타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 도중의 백운산 구간 풍광은 특히 유명하다. 암릉과 암괴들로 온 산에 하얀 빨래를 널어놓은 듯하다. 그게 흰 구름 같다고 해서 백운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 모습은 남쪽 얼음골 일대서 더 잘 살펴진다. 하지만 그런 외모와 달리 속에는 무거운 돌을 품어 큰 중석광산이 가동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백운산이란 이름도 ‘가지산 백운봉’으로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같이 불러서는 낯선 사람들에게 두 산덩이가 전혀 딴 것인 양 비치기 십상이다. 그 지릉 출발점인 1,065m봉에 지형도가 ‘아랫재’라는 이름표를 붙여 놓은 것 또한 더 시급히 손 봐야 할 대상이다. 진짜 아랫재는 거기서 1.3㎞나 떨어져 있다고 현장에 안내돼 있다. 걸어서 30여분 걸리는 거리다.

1,065m봉을 거친 후 남쪽으로 펼쳐지는 것은 삼양리 동네다. 마을의 느낌이 더없이 평화롭다. 주위가 병풍으로 빙 둘러싸인 모양새다. 동편은 백운산능선에 의해 호박소계곡과 구분됐다. 서편으로는 운문산이 솟아 좌우 균형을 맞춰준다. 남쪽에선 재약산 능선이 둥그렇게 앞을 장식해 준다.

주능선은 1,065m봉을 지난 후 얼마 안 가 본격적으로 하강해 아랫재를 향한다. 이 진짜 아랫재의 높이는 해발 723m에 불과하다. 그 남북으로 오르내리는 골길도 매우 부드럽다. 이 재가 운문령보다 100여m나 더 높다는 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다. 북으로 내려서면 운문사계곡 안 ‘아랫재골’(심심이골)이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삼양리 상양마을에 금방 닿는다.

이 재를 밀양 쪽에선 그냥 ‘아랫재’라 부른다. 하지만 청도 쪽에선 으레 ‘시례아랫재’라 한다. ‘시례’(詩禮)는 아랫재 남쪽의 밀양 얼음골 일대 여섯 마을 통칭이다. 왜 아랫재라 했는지를 두고도 설이 엇갈린다. 천화령(석남고개)보다 낮아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아랫재를 분계선으로 해서 동편은 가지산, 서편은 운문산으로 나뉜다고 했었다. 하지만 재에서는 운문산 정상이 훨씬 가깝다. 평면거리가 1.3㎞밖에 안 되고, 역시 굴곡 없는 단순 오르막이기도 하다.

운문산 정상부에는 청도산악회가 세운 정상석이 두 개나 있다. 하나는 1984년 건립한 작은 것으로, 산 높이를 1,200m로 표기했다가 1,188m로 수정했다. 다른 것은 산 꼭짓점에 1996년 세운 매우 큰 자연석이다. 거기 높이도 1,188m다. 그랬다면 그 남쪽 능동산~도랫재 능선 너머에 마주 선 재약산 사자봉(1,189m, 옛 천황산)보다 1m 낮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 확인되는 운문산 최고점 높이는 1,195m다. 영남알프스서 가지산에 이어 2위다.

운문산 정상서는 서편으로 ‘서릉’이 뻗어나간다. 호거산-억산의 남사면에 분포한 석골사 계곡을 꽉 틀어막는 빗장 구실을 하는 지릉이다. 이 서릉과 운문분맥 다음 구간 사이의 계곡 중 잠깐 튀어 오른 부분에 석골사 암자라는 ‘상운암’이 있다. 거기서는 청도 운문호 아래 마을과 그 너머 청도 시가지가 훤히 보인다. 인근 마을서는 그 절을 ‘삼암절’이라 불렀고 지형도에는 ‘三岩寺’(삼암사)로 남아 있다. 옛 이름일 테다.

운문산 정상에서는 ‘운문북릉’이라는 중요한 산줄기도 갈라져 나간다. ‘가지북릉’과 대칭되는 능선이다. 운문사 턱 앞까지 길게 내려서며 서편의 ‘못골’과 동편의 ‘큰골’을 구획한다.

운문분맥은 서릉과 북릉 중간의 북서쪽으로 내려선다. 그러나 그 주행도 겨우 1.7㎞(평면거리 기준) 만에 끝난다. ‘딱밭재’를 만나 산덩이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아랫재서 딱밭재에 이르는 운문산 주능선 바닥 길이는 다 해야 3㎞밖에 안 된다.

딱밭재 북편은 운문사 안 ‘못골’, 남쪽은 석골사 가는 딱밭골이다. ‘못골’ 상류는 다시 둘로 나뉜다. 운문산(정점)~딱밭재 중간에 희미하게 솟은 1,005m봉서 분계령이 출발해 내려가기 때문이다. 이 산줄기와 운문북릉 사이에 접근하기 힘든 비경이 숨었다.

높이가 해발 802m로 읽히는 딱밭재의 ‘딱밭’은 닥나무가 많은 곳이다. 한자로는 ‘楮田’(저전)이라 표기된다. ‘삼밭’과 더불어 전국 곳곳서 지명으로 쓰인다. 닥나무는 한지, 삼은 삼베 원료다.

한데 그 재의 이름을 두고도 혼란이 생겨 있다. ‘딱발재’라는 명칭이 뒤섞인 것이다. “재가 딱 버티고 서서 행인의 발길을 묶는다고 해서 딱발재라 한다”는 장난 같은 설명이 청도 ‘마을지명유래지’에 실려 있다. 그러나 재 남쪽 밀양 석골마을이나 북편 청도 신원리·박곡리에서는 모두 ‘딱밭재’라 했다. 남쪽 넓은 계곡에 ‘딱밭’이라 부르는 땅이 있다는 얘기다. 닥나무가 없는 지금도 여전히 ‘안딱밭’ ‘바깥딱밭’으로 세분해 부르기까지 한다고 했다.

딱밭재를 지나 솟아오르는 것은 바닥 길이가 1.8㎞쯤 되는 상당히 큰 산덩이다. 최고봉 높이도 962m나 돼 다음에 보게 될 억산(954m)보다 더 높다. 봉우리 또한 단봉(單峰)이 아니라 904m봉이 하나 더 있다.

962m봉은 딱밭재에서 15분 정도 올라야 도달된다. 헬기장처럼 평평하게 닦인 꼭짓점에서는 운문사 쪽 못골과 그 끝의 ‘문수선원’이 훤히 보인다. 거기서는 북으로 산줄기가 하나 뻗어 나가 ‘못골’을 더 세분한다. 남쪽의 딱밭재골(딱밭골)과 억산재골(대비골)을 갈라붙이는 지릉 출발점도 거기다.

962m봉서 904m봉 가는 데는 10분이면 된다. 그러나 산길은 904m봉 정점을 피해 간다. 두 봉우리 사이에 파인 880m재에서 904m봉 옆구리를 감아 돌면서 곧장 하강해 버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904m봉을 빼먹지 않으려면 880m재에서 능선을 따라 곧장 올라야 한다. ‘운문산 밀양 아-9’라는 긴급구조용 지점 표시목이 서 있는 자리가 가름점이다. 거길 지나쳤다면 조금 후 904m봉서 남쪽으로 갈라져 나간 지릉을 산길이 감아 돌 때 그 지릉을 타고 오르면 된다. 그곳까지 지나쳤다면 마지막 ‘밀양 아-10’ 팻말 지점서 거꾸로 쳐 올라야 한다.

962m봉 산덩이를 국가 공식 지형도는 ‘억산’이라 표기하고, 등산객들은 ‘범봉’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억산도 범봉도 아니다. 그 전래명칭은 ‘호거산’이다. 다음 기회에 자세히 살필 계획이다. 좀 지나치다 싶게 세밀히 봐놓는 것도 그때를 위해서다.

이 산덩이를 지나면 산줄기는 또 낮아져 재가 된다. 고도는 765m. 아랫재보다 조금 높다. 남쪽으로는 밀양 산내면 원서리 석골사 및 석골마을로 이어지는 ‘대비골’이 펼쳐져 있다. 북으로 내려서면 청도 금천면 박곡리 골 안 ‘대비사’에 이르는 또 다른 ‘대비골’이다. 북편 대비골을 걸을 경우, 대비사 주차장서 한 시간 정도면 재에 오를 수 있다.

그 재에는 ‘팔풍재’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팔풍’은 밀양 산내면 소재지 마을인 송백리의 핵심 자연마을 이름이다. 지금도 5일장이 서고, 한때는 극장까지 있었던 대처다. 그러나 재 북쪽 박곡리나 남쪽 석골마을 어디서도 그걸 ‘팔풍재’라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양쪽 공히 ‘억산재’ ‘억산고개’라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누가 어쩌다가 이상하고 낯선 이름을 붙였는지, 정말 희한한 일이다.

만약 억산재가 팔풍장 다니던 통로였으면 팔풍재라는 이름도 붙을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팔풍장은 거기서 직선거리로 쳐도 20리는 족히 떨어져 있다고 했다. 게다가 오르내리기조차 힘드는데 누가 물건 이고 지고 그리로 장보러 다니겠느냐는 것이다. 다만 밀양 쪽에서 ‘대비재’라고 부르는 경우는 있다고 했다. ‘대비골’이 그렇듯, 재 너머에 대비사가 있어 그랬을 터이다.

억산재는 특별한 경우에나 넘어 다닌 고개라고 했다. 청도 박곡리 어르신에겐 흉년에 양식 구하러 넘어 다녔던 기억이 가장 강한 듯했다. 물이 풍부한 밀양 산내에 상대적으로 곡식이 흔했다는 것이다. 반면 물이 귀한 청도에선 자주 흉년을 만났고, 그럴 때면 벼 대신 씨 뿌린 메밀꽃이 온 들을 하얗게 수놓았었다는 얘기가 가슴 아프게 들렸다.

그 억산고개 서편에 바로 붙어선 것이 ‘억산바위’이고, 그걸 넘으면 954m봉 정상에 도달한다. ‘億山’(억산)이란 정상 표석이 서 있는 봉우리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